2015년 6월 7일 일요일

느긋하게 걷는다는 것

특별히 영적 여정에서 느긋하게 느릿느릿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얼마나 천천히 걸어야 느리게 걷는 것인가?이렇게 느긋하게 걸으면서도 신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낙오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느림, 여유, 여백은 모두 이미 충분히 가진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그것이 게으름이나 나태함과는 어떻게 다른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느긋하게  사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지속이다. 끝냄이 아니라 끊음이고, 돌아감이 아니라 돌아봄이다. 경주가 아니라 완주다.

묵상의 여정  18.묵상여정의 속도(1) p250

속도는 이정표를 보지 못하게 한다

속도는 이정표를 보지 못하게 한다. 너무 빠른 속도는 우리에게 '방향감각'을 잃게 만든다. 등산을 하다가 조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해 지기 전에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큰 길로만 내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만 이정표를 보지 못한 것이다. 더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나는 이르러야 할 곳과 멀어졌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이정표는 안중에 없었다. 그럴때 믿는 것은 자기 확신 뿐이다. 길이 사라지고 날이 어두워질수록, 돌아가야 할 길이 아득하게 멀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속도의 노예가 되어 갔다.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 더 빠른 속도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주리라 기대한 것이다. 영적조난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기 정당화다. 영적 여정에서 이정표를 무시한 것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묵상 여정의 이정표는 성서와 성령과 성도다. 느릿하게 걸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우리의 온 몸을 수신기로 사용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앞서 본 대로 영적 여정의 동반자인 공동체와 더불어 걸울 수 있다. 그것들이 늘 내 속을 드나들면서 내 안의 길을 내도록 허용해야 한다.

 묵상의 여정 18.묵상 여정의 속도(1) p249-250

2015년 5월 31일 일요일

Leisure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하고만 있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가 정지해 있지 않고서는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없고, 거기에 집중하지도 침묵하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기도 중에 갑자기 그러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Leisure:A Spiritual Need중에서)

묵상의 여정 254페이지

하나님의 길

묵상의 여정은 신앙의 여정이다. 그것은 '몸'으로 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몸이 허락하는 속도만큼 그 여정을 감당할 수 있다. 몸이 느끼고 지각하고 반응하여 마음으로 전달되는 만큼 그것이 내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된다. 그때 우리는 우리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신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되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유하게 내 속에서 만들어 가시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된다. 그 여정은 끝이 있지만 , 끝에 당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 여정은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를 묻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달려왔는지를 묻는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묻지 않고 어떻게 달렸는지를 묻는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묻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달려왔는지를 묻는다. 누구를 제쳤는지를 묻지 않고, 누구와 동행했는지를 묻는다. 과정의 총합을 묻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묻는다.
    묵상의 여정 245 페이지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1600년의 교회역사

아래 글은 이라크 그리스도인에 대한 글로서

"지난 1600년간 기독교예배가 전파된 이후 처음으로 Mosul에 예배가 없어졌다.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은 참수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결과적으로 죽음까지 이르게되는 "

"In fact, on June 15 no Christian services were conducted in Mosul for the first time in over 1,600 years! Our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are being beheaded and crucified. And soon, we will face a society that demands that we forsake our Biblical values and accept its Godless dictates or suffer the consequences. Eventually, those consequences will also include death. "

이라크에 이렇게 오래도록 교회가 존재해왔고, 예배를 드려왔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였다.하나님의 성령께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끝까지 지키고 계심을 눈으로 목도하는것 같다.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나의 당화혈색소 수치

지난 6개월간 꾸준히 음식을 주의하여 먹고. 의사처방대로 약을 먹었더니 당화혈색소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혈색소 수치를 낮추심으로 내게 위로를 주신다.

혈액내과에서는 년초에 이상이 있던 피상태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의사선생님 한 말씀 "이제 걱정 마시고 사역하시면 됩니다!" 전혀 기대하거나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내가 분명 이 병원이 속한 교단의 선교사가 맞기는 한가보다.

하나님께서 나의 부르심에 대한 재확인과, 사역에 대한 인도하심, 그리고 물질의 공급하시 겠다는 약속과 마음과 육체에 부담을 주었던 당료와 피상태까지도 회복시키시는것같다.

하나님이 오늘까지 행하신 일에 감사한다.
그리고 또 내일부터 계속 앞서 행하실 일들에 감사하며 기뻐한다.

2014.8.12 고신복음병원에서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선교지 교회형태

회심자를 중심한 교회

처음 방콕으로 2기사역을 시작할때 동료선교사집에서 주일예배를 함께 참석했던 유민이가 택시와 부딪치는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유민이는 겉만 상처가 나고 심한 부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부터 저에게 주위를 환기시키고 계셨는데, 저는 그 분의 음성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 가정은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나와서 방콕에 지내는 동안 영어로 예배하는 국제교회도 안가고, 한인교회도 안가고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가정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속한 선교지역의 상황상 그렇게 아이들을 가정에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게 가정교회의 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고이후 저에게는 혼돈이 일어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찬참여' 문제였습니다. 제가 국제단체인 OMF와 조인을 할때도 지원서류에 "만약 선교지의 교회나 지도자가 당신이 믿고 있는 유아세례에 대하여 행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있었습니다. 당시의 질문의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와 유사했습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입교까지 했고, 그 신앙고백으로 신학공부후 강도사 인허를 받은 강도사 신분이었습니다. 아직 한번도 다른 교파의 공식적인 예배나 성찬식및 세례식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는 신앙의 다른 형태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고민하면서 대답하기를 "선교지의 교회와 선교지의 지도자들이 유아세례 형태의 신앙을 따르지 않고, 혹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선교지의 교회, 지도력의 방식대로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타문화언어훈련(뉴질랜드)이나 언어훈련, 그리고 치앙마이의 부족연합교회에서 교회개척 협력 사역을 할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뉴질랜드에서 타문화언어훈련중 출석한 뉴질랜드 침례교회를 출석하는 동안 큰 아이(유현)가 '성찬'에 참여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고 갈등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다른 형태의 신앙의 유전을 가진것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느라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이가 잘 따랐습니다. 태국에서 교회개척협력 사역을 할때는 다행히 저희 아이와 같은 또래들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외국 선교사들 중 몇 몇 가정은 아이들에게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큰 아이(유현)를 잘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방콕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하게 닥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민할것도 아니고 문제시 할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방콕에서 2기 사역을 막 시작하고 온 가족이 함께 출석할 교회를 찾고 있던 저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동료선교사의 가정에서 매주 드려지는 예배에 최선교사와 유현과 유민이가 참석하게 되었고, 다들 조금 거리가 있지만 상당히 기뻐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태국어로 예배하고 설교를 듣고 교제가 필요해서 다른 태국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에서 가끔씩 드려지는 가정예배에서 제가 인도하는 예배스타일이나 성경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동료선교사 집에서 예배에 참여하면서 매달 한번씩 있는 성찬식에 그 선교사 아이들은 성찬에 참여하는데 아이들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들을 자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다들 만족하지 못한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동료선교사님을 만나서 성찬문제로 아이들을 더 이상 선교사님 집에서 모이는 예배에 참여시킬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료선교사는 이해했고, 저희 가정은 몇 교회를 더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 교사들이 시작한 인터네셔널 교회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교사들과 친구들이 있고,
자신들이 익숙한 영어로 진행되는 모습 예배와 모임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성숙하고, 영어성경의 이해 능력들이 저를 능가할 정도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작은 아이(유민)에게는 영어로 전달되는 성경지식이 한국어로 읽는것보다 훨씬 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형태의 교회를 미리 정해놓고 사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지의 상황과 전도되는 그룹들의 구성원에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할것 같습니다. 또한 건물중심의 교회나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형태의 교회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